서귀포에 가면 자주 가는 곳이다.
이중섭 미술관은.
그림을 잘 그리는 못하지만 그래도 혼자 꼼지락 대면 이것저것 그리고 노는 사람이기도 하고,
손이 못한다고 눈도 못하는 건 아니니까...
좋은 것, 아름다운 걸 보는걸 너무너무 좋아하니까.
자주 가던 곳이지만 이번에 고 이건희 님의 컬렉션 중 12개의 이중섭 님의 그림이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 왔다 해서 달려갔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이고, 왠지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가는... 인간적인 애착까지 가는 작가라서,
오늘은 내용이 좀 길다. 사진도 많다. 할말이 엄청 많다.
스크롤 압박을... 각오해봅니다.
원래도 입장료가 1,000원~ 1,500원으로 비싼 편은 아닌데 기증품이다 보니 무료로 개방한다.
그런데 아마 이건희 컬렉션에 호기심을 느낀 관광객들이 몰리는 걸 염려했는지 예약제로 바뀌었다.
게다가 토요일... 당연히 예약은 꽉 차 있었다.
다행히 혹시 노쇼를 기대해 보려면 근처에 대기해 달라고 해서 기다렸다.
함덕에서 서귀포는 꽤 먼 거리이기 때문에 온 김에 보고 싶어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약 20분 뒤 전화가 왔고, 예약만하고 안나타나신 고마우신 분들 덕분에 무사히 미술관에 입장할 수 있었다.
https://culture.seogwipo.go.kr/jslee/show/booking.htm
무사히 예약을 마치고 이중섭 거리에 있는 미술관에 가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면,
좁지만 화사하고 아늑한 퐁낭길을 걸어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길지 않지만 갈 때마다 담벼락에 기대어 사진 한장 남기게 되는 예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이중섭 거주지가 나온다.
이곳에 여러번 찾은 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 미술관에 급히 가지 말고 이중섭 거주지에 먼저 들러 그의 방을 한번 들여다보고 올라가면 좋을 것 같다. 그가 제주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고 나면 그의 그림이 더 잘 보인다.
실제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는 곳인데 마음 넓게도 마당을 개방해 주신 곳이다.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자.
저 집 중에 맨 오른쪽 구석에 보면 나무문이 있다.
한국전쟁 시절, 그곳에서 방 한 칸을 빌려 아이 둘과 아내와 살며 초상화를 그려주며 곡식을 얻어먹고, 아이들과 나가 게를 잡아다 먹는 가난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렵게 제주도로 내려가는 상황, 가난했던 생활, 사랑하는 아이들에 대한 기억들, 그런 것들이 그의 그림에 오롯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의 마냥 행복해 보이는 그림들을 보고 나서 이 집에 방문해보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아이쿠~"하며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게 된다.
반대로 집을 보고 나서 그림을 보면... 그럼에도 아이들과 행복했구나... 하고 마음 놓게 되는 것 같다.
자주 다며보니... 나는 그랬다.
1층에 들어가면 처음 만나게 되는 "소".
이중섭만큼 소를 잘 그린 화가가 있을까?
고 이건희 회장님의 기증작품 중 12점이 이중섭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개인적으로 세법이나 정치는 잘 모르겠고, 그냥 그 가족의 결정이 너무 고맙다.
내가 볼 수 있게 해 줘서 너무너무 고맙다.
이중섭 화가의 외모에 반한 거냐고 물어봐도 난 부정하지 않는다.
느~~ 므 서정적으로 생기셨다.
이중섭의 소 그림 외의 다른 작품들을 보기 전에 그의 역사에 대해 최대한 짧게 설명해보자.
그는 평양에서 태어났고 어릴때부터 그림에 천재성을 보였다고 한다.
다행히 있는 집 자재여서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하다가 일본인 아내를 만나고,
한국으로 건너와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렸고, 그녀가 어렵게 한국에 들어와 결혼했다.
6.25가 터지자 흘러 흘러 서귀포까지 피난을 가게 된다.
아주 작은 방 한 칸에서 아이들을 낳고 어렵게 살다가 부산으로 가게 되고, 형편이 너무 어려워지던 차에 장인이 죽고
유산이 남게 되자 아직 일본인으로 기록이 남아있던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일단 일본에 건너가 있기로 한다.
몇 년이 흘러 어렵게 어렵게 선원증을 구해 일본에 방문하지만 선원의 신분으로 위장한 방문이었기 때문에 일주일 만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홀로 평생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아내에게 그림편지를 보내며 그리움에 사무치다 고작 41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그가 보낸 그림엽서 구석엔 아이들 이름이 쓰여있다.
때로는 일본어로, 때로는 한글로.
그의 그림 속 아이들은 항상 발가벗었고, 행복했다.
아마도 아이들의 어릴 적 모습만 기억에 남아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이번 이건희 컬렉션 기증작품 12중 이중섭의 대표적인 작품은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라고 한다.
이중섭 미술관에 갔다면 가까운 "구두미 포구 전망대"에 가보자.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섶섬"을 볼수 있다.
이중섭의 그림. "현해탄"
그의 가슴 절절한 편지들을 본 사람들이라면 이 그림이 얼마나 아픈지...
가족들을 일본에 보낸 후에도 부산에서 꾸준한 작가 활동을 했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예술가는 가난했고, 외로웠고, 그리웠다.
그의 가난과 사무친 그리움은 그의 은지화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중섭의 은지화는 시대를 말할 때, 그리고 이중섭의 삶을 이야기할 때 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 중 하나다. 은지화는 담배갑 속의 은지에 송곳과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홈이 생기도록 드로잉을 한 일종의 선각화라고 할 수 있다. 은지의 표면은 물이 스며들지 않기 때문에 송곳 등으로 드로잉을 한 은지위에 물감을 바르거나 담뱃진을 문지른 후 마르기 전에 닦아내면 파인선 부분에만 색이 입혀져 은지화가 되는 것이다.
평생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워한 천재 화가의 삶과 작품을 어떻게 내까짓게 몇 줄의 설명으로 담을 수 있을까.
꼭 예약하고 가서 작품을 보고, 그의 삶에 대한 기록들을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 미술관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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