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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산책

제주 도민의 아침. 서우봉

by 교양중년 개복치씨 2021.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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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끔 내가 인스타에 올리는 사진들을 보면서 제주도 생활을 무척~ 부러워한다.
근데 사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 도시에 살면 편리함이 있고, 시골에 살면 자연이 있다는 것뿐.
어쩌면 그냥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어느날 부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는 것도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매일 지루하게 집구석에 뒹굴며 남들처럼 살림하느라 바쁘다가 어느 날 이쁜 카페 한번 다녀오는 건데…
제주도에 산다는 이유로 남들과 다르게 “팔자좋은 사람”으로 비치는 모습이 살짝 불편해지는 중이다.
“니 팔자가 좋아서 참 기뻐~”하는 사람보다,
사진에 예쁘게 나오지는 않지만 나보다 훨씬 많은 걸 가진 자신의 팔자를 불평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그냥…닥치고 살기로 했다.
나만 알고 있고싶은 제주살이의 진짜 예쁜 모습들…
여기다 써봐야지…
사실 제주에서의 삶은… 인스타보다 훨씬 근사하다.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산책에 나섰다.
바닷길 따라 서우봉에 올라갔다가 정상 찍고 내려오는 길이 함덕에서 제일 편하고 즐거운 산책 코스다.

바닷가로 가는 지름길이 대명콘도를 가로지르는 거라. ㅋㅋㅋ
꽤나 큰 덩치의 리조트라 어쩔 수 없이 종종 대명 콘도를 가로지르곤 한다
대명콘도에 줄지어 심어진 야자나무와 떠오르는 아침해가 약간 웅장한걸?
새벽부터 나오길 잘했다.

대명콘도 가로질러 가는데 고양이 한 마리다 따라 들어왔다. 아우~ 슈렉고양이다!!!

하지만 쫓아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자칫 건물에 갇혀버리면 손님들 피해 안 주려는 직원들에게 어쩔 수 없이 험한 꼴 당할 수도 있으니까.
이쁘지만 안녕~

이렇게 사람 없이 조용한 새벽길은 오래간 만이네.


바닷가 운동장에 이미 나와 운동 중이신 어르신이 보였다.
바다가 보이는 운동장.
붉은 기운이 서서히 바닷속으로 내려앉고 있다.

바닷가를 슬쩍 한 바퀴 도는데

하늘 너 너무 굉장한 거 아니냐?
너무 굉장한거 아니신가요? 왠지 존대가….


서우봉 오르는 길.
간간히 농사짓는 밭들도 있고…

해바라기 꽃밭도 있다.

비가 자주 와서 못 와본 사이에 이미 해바라기 밭은 시들어 가고 있었다.
해마다 서우봉 중턱에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밭이 생긴다. 꽃밭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

서우봉 정상에 오르면 북촌 방향으로 벤치들이 마련되어있다.
주변에 무덤도 많다. ㅋㅋㅋ
저~ 멀리 바다에 꽂힌 풍력발전기도 보이고 자그마한 오름도 보이고… 시야가 맑은 날은 세화에 있는 단골 카페도 보인다.
저기 앉아있으면…2시간 정도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정상을 찍고 서우봉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길.
서우봉이라는 말은 소가 누워있는 모양이라는 뜻이다. 살짝의 오르내림이 있는 즐거운 산책코스다.
환한 함덕 바닷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날마다 달라지는 바닷 색과 파도의 모양들은 한참은 구경해도 좋다.

바닷가에서 급하게 오르내리면 40분이면 왕복할 수 있는 서우봉이지만 파도도 구경하고, 해도 구경하고… 여기저기 이끼들과, 새로 돋아나는 풀들을 구경하다 보면 2시간을 훌쩍 지나는 서우봉 산책길.
산책할 때 내 뒤에서 남편분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고개 들고! 천천히~”
버릇처럼 목표지를 향해 빨라지는 내 걸음을 보면서 항상 속도를 줄여준다.
조금만 속도를 늦추면 다른 많이 것들이 보인다.

나무 터널도 예쁘지만 그 앞에 이끼도 낙엽도 하나하나 다른 생김새가 어여쁘다.

괴기스러운 무덤이 아닌, 자손을 잘 두신 어르신들의 편안한 쉼자리도 잘 보면 참 예쁘다.
역시 제주는 파릇파릇함 너머의 바다가 너어~무 좋다.

XX김밥집보다, XX카페보다, 여기가 훨씬 가볼만하다는 걸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가끔 간다. 나도 매일 가는 거 아니다.
남들처럼 가끔 간다.
그래도 여기 사니까, 그래서 남들보다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는 함덕에 살아서 참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 집 앞 화분에 국화가 비현실적으로 예쁘게 피어있다.

제주는 사람처럼 살기 참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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