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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오헨로 순례길 시작, 료젠지 방문 후기

by 교양중년 개복치씨 2025.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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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길 중에 세계 문화유산인 곳이 두 군데 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스페인 산티아고와 일본의 길이다. 이 일본 순례자의 길 중에서 시코쿠 지역 순례자의 길이 시작되는 첫 번째 절이 도쿠시마 부근에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오헨로(お遍路) 순례길은 일본 시코쿠(四国) 지역에 있는 88개의 사찰을 도는 불교 순례길이다. 순례길의 시작점은 도쿠시마(徳島) 현에 위치한 료젠지(霊山寺)다. 료젠지는 제1번 사찰로 많은 순례자가 이곳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굳이 순례길을 걸을 의지는 없지만 이 지역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찰이 있다고 하니 다녀와 봤다. 찾아봤던 평가보다 훨씬 좋았다. 

오헨로 순례길과 료젠지의 의미

1. 오헨로란?

시코쿠에 있는 88개의 사찰을 방문하는 불교 순례길 고보대사(弘法大師) 쿠카이(空海)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로 일본 불교 중 진언종(真言宗)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앙심뿐만 아니라 여행, 자기 수양, 걷기의 즐거움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많으며, 코로나 이후로는 도보뿐 아니라 자전거나 자동차로 순례하는 순례자들도 모두 반기고 있다. 

2. 료젠지(霊山寺)

오헨로 1번 사찰로, 순례자의 출발점 순례에 필요한 복장과 도구를 갖출 수 있는 장소로 초심자도 쉽게 순례를 시작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곳이다. 경내에서 기도를 드리고 순례길의 첫걸음을 내딛는 장소로 나름 중요한 시작 지점이다. 온통 '구매품'만 있는 안내소는 구매하지 않는 관광객에게 친절하지는 않다. 
 

오헨로 순례길 제 1번 사찰 료젠지(霊山寺)  가는 법

도쿠시마역에서 편도 330엔 혹은 왕복 660엔 티켓을 미리 구매하고 3번 플랫폼에서 한량 혹은 두량짜리 기차를 탑승하고 5번째 역인 '반도역'에 내리면 한 번에 갈 수 있다. 일요일이어서인지 워낙 사람이 없는 지역인 건지 한산한 기차로 지나는 철교가 정겹고 재미있다. 

 
'반도역'은 작은 무인 역으로, 역에서 나가면 바로 료젠지 안내문이 보인다. 그냥 바닥에 보이는 녹색 선을 따라가면 된다. 
 

료젠지(霊山寺)

1. 사찰 분위기

료젠지는 오헨로의 출발점답게 순례자들을 위한 시설과 안내가 갖춰져 있다. 순례입구에는 오헨로 복장을 갖춘 순례자들이 많이 보이며, 자전거나 차로 도착해 절에서 기도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당의 연못에는 인상적이라고 할만큼 사람의 살색을 가진 커다랗고 살찐 잉어가 둥둥 떠다닌다. 내 느낌으로는 살짝 무서웠다. 
 


오래된 나무에 어울리지 않는 정교한 만듦새가 구석구석 보는 재미를 준다. 자요롭게 쳐볼 수 있는 종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종만 치고 왔는데 소원이라도 하나 빌어볼 걸 그랬다. 
 


오헨로 길을 걷고자 하는 순례자들은 대부분 저렇게 하얀색 윗옷을 입고, 하얀색 가방을 매고, 지팡이를 짚고, 염주 같은 걸 들고 걷는다. 모두 절 입구에서 판매하고 있다. 싸지는 않다. 
 


규모는 크지 않은 절이다. 어떤 방문객들은 10분컷이라고도 하던데, 여행 관점에 따라 모두들 의견이 다르겠지만 워낙 시골 좋아하고 사찰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구석구석 볼 거 많고 앉아서 쉬기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40분 넘게 머물렀던 것 같다. 

2. 순례 준비 과정

료젠지 경내에서 순례복, 삿갓, 지팡이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순례 도장을 받을 수 있는 책인 납경장도 판매한다. 순례의 기본 예법과 기도문을 익힐 수 있는 가이드도 준비되어 있다. 매점에서는 순례자 혹은 구매자가 아닌 사람을 그리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돈 냄새가 좀 난다. 하지만 경내 분위기는 좋다.

3. 료젠지에서의 기도

사찰의 본당과 대사당(大師堂)에서 참배를 올리는 것이 기본 절차다.

  • 정문을 지나 손을 씻고 입을 헹구는 정화 과정(手水舎)을 지나,
  • 향을 피우고 종을 울린 후 본당과 대사당에서 참배하고,
  • 불경 낭독과 함께 순례길의 안전과 무사 완주를 기원하고 길을 떠난다. 

 

 

오헨로 순례길 제 2번 사찰 극락사(極楽寺, 고쿠분지)

1번 사찰에서 모든 영광을 누리다 보니 사람이 극도로 적어진다. 약 30분간 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한 명밖에 못 봤다. 하지만 사찰은 료젠지처럼 오래된 고찰이며 구석구석 볼 게 많아서 나름 오랫동안 놀다 나왔다. 
 

 
료젠지를 떠나 약 10분~15분 가량 초록색 선을 따라 마을 길을 걸어왔더니 약간 짝퉁 같은, 중국절 같은 그런 절이 보여서 조금 실망하면서 들어갔는데 입구만 그렇다. 경내로 들어가면 너무나 오래되어서 여우들이 나와서 '이라샤이마세~'를 외친대도 놀라울 것 같지 않다. 
 

 
대웅전을 여러개의 계단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조금 아쉽고, 앉을 곳도 없어서 대웅전 나무 계단에 앉아서 쉬었다. 엄청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고찰의 느낌이 강하다. 
 


일본에서 이런 나무들을 볼 때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나온 수 많은 요괴와 도깨비등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크고 무섭게 생긴 나무들이 축축한 비 오는 날 밤에 불빛이라도 받으면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만 해도 오싹하니 낮에만 잠시 방문하는 것으로 끝내고 다시 '반도역'으로 돌아갔다. 
 

 
 

우리에게 료젠지는 순례자의 길 보다는 관광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순례자의 길을 체험해 보고자 료젠지에서 바로 이어지는 1.1km 거리의 두 번째 순례지인 극락사까지만 걸어보았는데, 사람 없는 작은 마을의 뒤안길을 걷고 있자니 왠지 차분해지기는 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날씨도 제법 눅눅해서 순례길의 맛을 제대로 본 것 같다. 
 
마을은 일요일에 찾아서 그런지 편의점인 로손 하나를 빼고나면 영업 중인 곳이 단 한 곳도 없는 아주 조용하고 정적인 마을이었으며, 두 번째 절인 극락사까지 갔다가 다시 '반도역'으로 돌아가는 길은 약 25분~30분 정도 걸었다. 우리는 관광지에서는 아주 느리게 걸으며 구석구석을 다 구경하기 때문에 급하게 걷는다면 훨씬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역에 도착하면 작은 무인역 안에 대합실이 있다. 정겨운 손뜨게 방석이 몇개 있고, 무료로 사용 가능한 우산도 몇개 구비되어 있다. 
 

 
미리 시간표를 찍어가면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면 '반도역'에 도착 후에 대합실 안에 있는 시간표를 찍어가면 돌아오는 시간을 맞출 수 있다. 파란 줄은 시간, 그 옆은 몇분에 열차가 도착하는 지 적혀있고, 더 옆으로 작은 네모박스 안에 숫자 1이나 2가 써 있는건, 1번 트랙이냐 2번 트랙이냐를 알려주는 표시다.  

 
오헨로는 신앙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길이기도 하다고 한다. 나는 원래 오래된 성당이나 절에 방문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시골 마을의 사찰을 방문하여 매우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료젠지' 대웅전에서 기념품으로 사온 천. 수건이라고 해야 하나? 어디에 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곧잘 수행자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나름 시코쿠 순례길의 첫 시작점이라고 하니 무언가 기념품을 하나 갖고 싶어서 구매했다. 500엔. (전시품을 촬영해서 빛이 좀 들어갔지만 그냥 하얀 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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