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미리 내 정보를 말하자면, 호르몬 수용체 양성 2.5기였고, 림프절 절제를 했고,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 모든 치료와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므로, 다른 병원에서 진행한 수술 과정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미리 인지하고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처음 유방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지만, 긴 항암 기간을 거치고 나서 수술을 앞두고도 너무 막연했다. 찾아보면 3일간 꼼짝을 못 한다는 것도 알겠고, 8일~10일 정도 입원을 한다는 것도 알겠는데 사실 그런 것보다 세세한 것들이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유방암 수술 중 동시진행 복부재건'에 대해 상세히 적어보고자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수술 전 준비
나는 사실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입원했다. 수술날짜 잡기가 워낙 어려운 대학 병원이다 보니 약 5개월 전에 이미 날짜를 잡아놓은 터라 혹시라도 감기나 코로나라도 걸려 수술 날짜에 지장이 갈까 봐 내내 조심하며 지낸 것이 내가 준비한 전부다.
수술 내용 안내나 수술 전 필요한 모든 건 내 담당쌤과 간호사 쌤이 때가 되면 알아서 진행시켜 준다. 그냥 내 입원실 구경하면서 적당히 침대 세팅 하고 있다 보면 알아서 진행된다. 어쩔 줄 몰라서 우왕좌왕할 필요 없다.
준비물
- 빨대
누워서 고개도 못 돌리는 첫날과 둘째날 수분섭취를 위해 필요하다.
- 가습기
병실은 지나치게 건조하다. 작은 가습기나 젖은 수건이라도 걸어두어야 한다.
- 쿠션 2개
최소 1주일 이상 입원서 작은 침대 안에서 몸을 이리 저리 돌리며 편하게 있으려면 좀 말랑말랑한 쿠션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보호자 침대가 워낙 작아서 보호자도 간간히 사용해야 한다.
- 슬리퍼
크록스 공화국이라 모두들 크록스 끌고 다닌다. 어쨋거나 슬리퍼 종류 하나는 꼭 준비하자.
- 수건
간단한 세안용으로도 필요하지만 병실이 건조할때 적셔서 걸어두기에도 좋다. 많이 가져갈 필요는 없겠지만 조금 넉넉하게 준비하면 좋겠다.
- 담요
날씨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술 후 4일 정도 되면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계속 누워 있느라 답답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으면 당장 나가 바람을 좀 맞고 싶어진다. 수술후라 몸이 약해진 상태고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 후드자켓이나 담요, 스카프 등 칭칭 감고나갈 준비물들이 필요하다.
- 물티슈
환자용 바디 물티수슈도 있다. 그냥 물티슈보다 몸 구석구석 닦기 덜 찝찝하다. 꼭 필요하다.
- 기타 개인용품
세면도구나 노트북, 핸드폰과 충전기, 로션 같은 본인이 일주일간 사용할 물건들은 알아서 챙기면 된다. 요새는 물 없이 사용하는 환자용 샴프가 워낙 여러가지 나온다. 필요하다면 이런 것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나는 8번의 항암으로 이미 몸에 털이 없는 상태라서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는 편했다.
상담
수술을 앞두고 전날 입원하며, 수술을 집도하시는 교수님은 아니고, 앞으로 쭈욱 나를 담당해 줄 담당쌤이 내 수술에 대해 설명해 준다. 내 경우에는 꽤 늦은 시간이었다. 저녁 8시쯤? 수술은 8시간쯤 걸릴 거라는 이야기, 배의 지방을 빼가는 게 아니라 살과 혈관과, 근육등을 떼어내 가슴에 넣은 후에 이 근육과 혈관을 연결하고 24시간 지켜보면서 혈관들이 무사히 자리 잡는지를 보는 수술이라고 설명해 주신다. 수술 후 남은 살과 지방은 의료발전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내용에도 사인했다.
사실 나는 생각보다 너무 어마무시한 수술이라서 조금 당황하기는 했다. 지금이라도 바꾸겠냐고 물어봤다면 아마 바꿨을 것 같다. 수술을 결정하기 전에 설명해 줄 때 하나라도 더 자세히 물어보고 결정하자. 나는 바쁜 사람들 조금이라도 일을 줄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너무 많은 것을 놓친 것 같아 나중에 조금 후회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병원에 가면 또 똑같이 내가 더 서둘러 나와버리고 있다.
제모
수술을 위해 사타구니 주변 체모를 모두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이미 8번의 항암으로 온몸에 털이 없는 양서류 상태여서 큰 문제는 없었다. 한 두 개 남은 건 병원에서 제공해 주는 크림을 사용하여 닦아내서 없앴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간호사 쌤들이 전기면도기로 밀어주신다. 크림이나 전기등의 서비스도 모두 계산되었던 것이 아닐까 나중에야 생각했다.
관장
수술 후 며칠간 움직일 수 없으니 미리 관장을 한다. 밤에 한 번 하고 수술 들어가기 전 아침에 한번 한다. 이걸로 화장실 문제는 다 해결된다. 보호자로 남편이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화장실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어져서 마음 편히 수술에 들어갔다. 앞으로도 화장실 문제는 모두 병원에서 알아서 해결한다.
금식
수술 전날 이른 저녁을 먹은 후부터 금식이다. 수술이 예정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수순이다.
수술
아침에 관장을 한번 더 하고, 수술실로 이동하면서 유두에 주사를 한 대 맞는다. 주사 부위가 예민해서 그렇지 아프지는 않다. 걸어가도 될 것 같은데 왜인지 병실부터 침대를 타고 이동한다. 약간 신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남편과 눈물을 흘리며 헤어지지도 않았다. 어영부영 쓱 밀려들어가서 본 수술실은 영화에서처럼 천장이 높고 하얗고 그렇지 않았다. 사방이 검은색이었던 것 같다. 큰 주방 같았다. 들어가자마자 누가 묻지도 않고 난 바로 정신을 잃었다. 뭔가 후다닥이다. 나야 인생에 한번 있는 엄청난 이벤트지만 그들에게는 매일 쉼 없이 일어나는 직업이니까.
수술 후
정신을 차리면 엄청나게 춥다.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로 추운 몸을 여러 사람이 따뜻한 담요를 들고 달려들어 감싸준다. 얼핏 보이는 방 안은 나 같은 환자들과 담요로 감싸는 일을 해주는 의료진들이 꽉 차 있었다. 대체 하루에 수술이 몇 번이길래 이렇게 많은 환자들이 같은 시간이 쏟아져 나왔는지 궁금했다.
덜덜 떨리는 몸과 딱딱 부딪히는 이가 아직 진정이 안 되는 상태로 입원실로 이동했다. 남편 목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없다.
8시간 예상했던 수술은 내 혈관이 생각보다 좁아서 1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소변줄을 비롯해서 6개의 호수를 몸에 달고 나왔다.
수술날 밤
서너 시간에 한 번씩 담당의와 간호사 쌤들이 이리저리 체크하고, 남편도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이것저것 체크해 기록하며 내 상태를 살핀다. 다른 병원은 압박스타킹이나 욕창방지 매트리스를 미리 신청하라는 등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분당서울대 병원은 그런 걸 물어본 사람 없이 수술 후에 모두 세팅되어 나온다. 압박스타킹이 아니라 에어마사지기가 양다리를 잡고 마사지 중이고, 등에는 욕창방지용 매트리스가 깔려있지만 3일간 움직이지 못하고 고개만 돌리는 동안은 정말 죽을 맛이다. 보호자가 등과 엉덩이 부분에 손을 한 번씩만 넣어줘도 살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엉치뼈 부분이 너무 힘들었다. 꼼짝 못 하는 상태의 환자이기 때문에 가장 넣어주기 힘든 부위이기는 하다. 겪고 보니 못 움직일 건 아니다. 큰 수술을 했으니 본능적으로 조심하는 것 같다. 이외에도 보호자는 꼭 필요하다.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술 다음날
수술 다음날 아침부터 죽이 나온다. 죽을 먹고 변이 만들어지지 않는 약을 먹는다. 어차피 무서워서 한두 숟가락 이상은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병원에 있는 동안 화장실 문제는 병원에서 다 알아서 한다. 믿고 먹어도 괜찮다. 문명이 고맙다. 그러니 체력을 위해 조금이라도 먹어두기를 추천한다.
무통 주사가 있어서 아플 때마다 한 번씩 누를 수 있다. 아프면 참지 말고 아프다고 생각되면 바로바로 누르라고 한다.
수술 후 3일
의료진이 계속 살펴본 건 배에서 떼어간 살과 근육, 혈관이 내 가슴 부분의 근육, 혈관과 잘 연결되었는지, 혹시 괴사 하지는 않는지살펴본 것이었는데, 일단 24시간이면 안심이라고는 한다. 그래도 3일을 보고 난 후에 유방의 수술 부위를 닫는다.
3일째부터 일단 침대에서 등을 떼고 앉기를 시작해서 잠깐씩 서보다가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지만 아직 허리를 피지는 못한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살짝 이를 닦으러 갈 수 있다. 내 발로 걸어서 작은 처치방으로 들어가 유방의 수술 부위를 꿰매는 시술을 한다.
스스로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변이 너무 딱딱해지지 않는 약을 먹는다. 너무 친절하다.
수술 후 1주일
복도까지 걸어 나갈 수 있고, 밥도 조금씩 먹을 수 있다. 복부재견 수술은 완전히 성공했고, 조만간 퇴원할 수 있다. 이때까지는 어딘지 모르게 계속 아파서 입에서 노인들이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통주사는 제거했지만 밤에는 진통제를 계속 맞는다.
퇴원 후
8일째 퇴원을 했다. 머리며 눈썹이며 털도 없고, 얼굴색도 다 죽어서는 구부정하게 엉금엉금 집으로 들아간다. 나의 변한 외모에 충격받을 것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제 화장실은 모두 내 힘으로 처리할 수 있다. 수술부위를 커다란 반창고로 모두 덮고 나왔기 때문에 샤워를 해도 된다고 한다. 나는 안 했다. 다행히 추운 날씨였고, 목숨 걸고 한 수술인데 며칠 참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의 환자들도 다음 진료까지 샤워는 생략하고 수건으로 닦아내기만 한다고 한다.
위에 말한 것처럼, 바빠보이는 의료진을 귀찮게 하기가 미안해 수술에 관해 자세히 물어보지도 못하고 덜컥 복부동시복원 수술을 결정했다. 복부복원이든 보형물 복원이든 자세히 물어보고 선택하길 바란다. 나는 정말 그냥 배에서 지방 조금 빼서 가슴에 넣는 건 줄 알았다.
수술과정 중 식사나 화장실, 세면이나 샤워등의 문제는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우리보다 훨씬 경험 많은 병원에서 알아서 다 준비, 진행해주니까 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보호자가 옆에 있어주지 못한다면 최소 4일 정도는 간병인이라도 신청하고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 이 부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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