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더 많이 필요하다.
제주살이 4년 차쯤 되니 서울에 올라오면 그렇게 신기한 게 많다.
시댁이 용인 수지라서 육지 올라오면 거의 수지에 있는데 집 앞 몰도 으리으리하고, 거기 들어가면 막 비싼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다. ㅎㅎㅎㅎ
친정은 서울 방배동인데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던 거기서, 얼마 전 새로 생긴 너무 근사한 곳을 발견했다.
육지 올라와서 시댁 어르신들이나 친정 어른들만 만나느라 정신 없는 곳에서 잠깐 쉬어가는 곳을 발견한 것 같아 너무 기쁘다.
조용한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갤러리 컬러비트'는 건물 2층에 있고, 1층에서 벨을 누르면 문을 열어준다.
오래된 동네라 주차 공간이 참~ 없는 동네인 방배동에서 주차할 곳이 있는 갤러리라는 게 아주 매력적이다.
월요일 휴무, 10시~ 7시까지 개관이라고 한다.
처음에 가게 된건 '오픈전시회'이라고 여기저기 붙어있던 포스터 보고 간 거였는데, 공간 느낌이 좋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요즘 무료 전시 공간들이 많이 생기기는 했지만 개인이 하는 갤러리 치고 작지 않은 공간이다.
조용히 깔려있는 음악소리 위로 사람들이 조용히 나누는 대화소리, 따뜻한 조명까지... 첫인상이 좋았다.
그 후로 육지 올라올때마다 가느라 벌써 네 번째 다녀왔다.
맨 처음 이곳을 혼자 발견하고 좋아서 두번째는 남편과 함께 다녀왔었다.
그러다 인별에 계속 올라오던 이정인 작가님의 작품이 보고 싶어서 육지 오자마자 서둘러 갔다.
다행히 마지막 날 작품 감상에 성공했다. ^^
세 번째라 '갤러리 컬러비트'라는 공간이 익숙한 줄 알았는데... 혼자다... 아무도 없다...
관장님과 나...
우리 둘...
제가 들어가도 되는걸까요?
반갑게 맞아주시는 관장님 덕에 일단 들어는 갔는데 처음에 뻘쭘해 죽는 줄.
하지만 잠깐의 시간이 흘러 공기에 익숙해 지고나면 공간에 익숙해 지는건 금방이다.
거기에 간단하게 작품 설명해 주시는 관장님 덕에 긴장감 약 40% 떨어짐.
섬에 살아서 그런가... 온통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작품들에 유독 눈이 오래 머물렀다.
작품 가격까지 다 적혀 있어서 '아~ 이런 작품은 이런 가격이구나...'라는 걸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한바퀴 돌아보고나니 왠지 궁금해져서 관장님을 봤다.
뭔가 궁금은 한데... 사실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라 그냥 봤다. 빤히~ ㅎㅎㅎ
관장님이 조용히 웃으시며 작품에 관한 설명을 더해 주셨다.
음... 내가 그림을 둘러보는 동안 공간에 익숙해 진건가... 긴장도 50% 하락. 약간 편해지려 한다. ㅎㅎㅎ
어느 정도 보고 난 작품들에 이야기가 더해졌다.
나무와 물이 많은 건 생명의 원천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의도,
호두나무를 다듬거나, 바다에서 오랫동안 표류하다 육지에 닿은 나무들을 사용해서 작업한다는 작가의 작업 과정에 관한 이야기들, 다음 전시는 이정인 작가님 부인의 작품전시라는 이야기까지.
역시~ 뭐든 알고 보면 재미가 배가 된다.
조용한 공간에서 과하지 않게, 내가 궁금해 할 부분만 설명해 주시는 관장님과의 시간이 불편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좀... 뭐랄까... 아는 언니가 얘기해주는 느낌? 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친절한데 과하지 않아 불편하지 않고 좋았다.
방배동에 머물고 있었던지라 전시가 바뀌자마자 개관 시간인 아침 10시부터 찾아갔다.
알아보시고선 마침 커피 내리는 중이라며 커피를 한잔 주셨다.
이재은 작가님의 개인전이었다.
알록달록한 색들과 일정하지 않은 패턴들이 예뻤다.
지성인답게 커피는 작품과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서 마셨다.
역시 예술작품은 한발 떨어져서 봐야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
조용한 음악 아래, 갤러리 가운테 테이블에 앉아 막 내린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자니
가슴속 깊이 있던 숨까지 후~ 하고 내뱉어졌다.
몇번째 보고나니 어느덧 마주앉은 관장님이 부러웠다.
"관장님 부러워요..." 했더니,
"예~ 저도 너무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하신다.
진심 부럽습니다!!!
원래는 현대미술, 모던아트 이런 걸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다.
르네상스, 초현실주의, 인상파 뭐 그런 작품들 봐야 가슴이 벌렁거리고, 가끔은 슬금슬금 눈물도 맺히고 하는 취향이라 현대 미술을 보면 뭐랄까... 그냥 인테리어 소품 같은 느낌?
그랬는데... 이제 네 번밖에 안 가봤지만 여기서 개인전을 몇 번 보고 나니 각자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 세계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작품은 2, 3주마다 바뀐다고 한다.
언젠가는 한번쯤 작품을 살 날도 올지 모르지만,
일단 나와 눈이 맞아버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는 가볍게 놀러 와도 괜찮다고 관장님의 말씀을 믿고,
다음번엔 커피 맛집에 들러 커피나 한잔 사들고 가야겠다.
혼자 찾아갈 수 있는 감성 아지트가 생겨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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